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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가은교회입니다. 박바울 목사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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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의 말씀 / 3월 21일 - 27일(1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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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9

저는 이전에 모세가 40살에 애굽에서 도망치고, 80세에 부름을 받고 그때 부터 출애굽 40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고난을 받았으니까, 누구 보다도 가나안 땅에 모세가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성경은 모세가 아직 기력이 쇠하지 않았고 눈도 흐리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죽더라고요. 여러분 꼭 암으로 죽는게 아닙니다. 모세를 보니까 눈도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생생한데, 하나님이 불러 가셨어요. 전 이전에 성경을 보면서 이해가 안되더라고, 몰라도 선악속에서 믿는 그 믿음이 성경을 봐도 내 육신의 수준이 선악 속에서 성경을 보니까. 이해가 안되는 거야. 그런 만큼 모세가 불쌍하더라고,, 보여주지나 말지. 정탐꾼을 통해 들으니까. 포도 한송이를 두 사람이 짊어져야 할만큼의 땅인데, 그런데 모세는 안돼. 이 갭이 나는 풀수 없었어요.

이것이 내 인생속에 동일하게, 나도 있었던 만큼 금 송아지 하나님 믿고 있었던 건데, 야곱을 통해서 30년 만에 ‘엘 벧엘’. 벧엘에서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 속에 구원하시는 일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항상 하셨던 일은 동일한데 원수된 육신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30년 이후에 엘 벧엘. 이것이 내 인생속에서도, 조금씩이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깨달아 가는 만큼은, 어느세 성경을 보는데 이전과 다른거 있죠. 어느세 이 갭이 풀려진 거 있죠. 선악의 세계는 선악의 세계일 뿐입니다. 기껏해봤자 긍정적으로 보는것 밖에 없어요. 아니요. 구원 받아야 해. 그런 만큼 어떻게 보여지냐. 내가 생각 하는 수준 속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은 육신의 수준일 뿐이구나. 저는 의심 하지도 않았거든요. 하나님은 완전하실 거야. 덮어놓고 그냥 믿어야 해. 이 정도 수준이었거든요. 이것이 내 갭의 문제요 내 수준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었던 건데.

지금은 이미 모세 광야 40년 속에 보이는 땅을 통해서 약속의 땅, 그 약속의 땅을 통한 언약 속에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영원한 축복, 이미 40년 인생 속에 모세 인생속에 하신 일이구나.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속에 모세를 통해서 나타내셨던 일이구나. 이 갭이 풀어지니까. 모세가,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보여주셨을 때 어떻게 보았겠냐. 부러움의 땅이 아니에요. 내게 이미 보이는 땅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나를 구원하셨고 구원을 이루신 실상인 믿음 안에서. 확인되어지는 보여지는 땅일 뿐이에요. 그런 자들은 들어가도 되고 안들어가도 되요. 나타나도 되고 안 나타나도 되요. 그게 실상인 믿음으로! 에요. 그것을 모세를 통해서, 이걸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기 위해서 가나안 땅 들어 가지 않고 부르신 겁니다.

믿음으로 나타나도 되고 안 나타나도 된다. 이미 모세는 그의 인생속에 보이지 않는 실상인 믿음으로! 이미 그리스도 안에 그 약속된 축복을 저 보이는 땅을 통하여 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에게 나타내주셨던 그 비밀을 이미 누리고 있었다. 또 그런 것이 전부면 안되잖아요. 동일한 축복을 받아가는 여호수아, 갈렙, 난 전에 비교 했을때 이거 모세 보다 여호수아 갈렙이 더 나은것 아니야? 못 들어가고 들어간것이 얼마나 차이가 크냐고! 믿음으로 보면 똑같은 거든요. 아직도 이 부분에 갭이 있는 만큼은 육신 속에 그 기준 때문에 그래요. 그런 만큼 못 들어가고 들어간것이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겁니다. 아니요. 예수께서 오셔서 마태복음 17장이죠. 따로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이걸 변화 산상이라고 하거든요. 보이는 높은 산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일이 뭡니까? 하나님 나라가 임한 거예요.

제자들은 그 엄청난 중요한 일을 따로 뽑아서 데리고 가는데 따로 뽑은 놈들도 별 수준이 없어. 이게 우리의 수준이에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만큼 어찌할수 없는 육신의 수준을 감당치 못합니다. 기도 하라고 했는데도, 하나님이 그 일을 나타내고 있는데도 시달리는 거죠. 졸고 있는 거죠. 문득 깨어, 이게 우리 수준이에요. 하나님의 구원의 일이 이렇게 우리 수준에 나타날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문득 문득 그래서 이걸 우리 수준임을 모르면 저 베드로 처럼 된다. 베드로가 눈을 뜨고 보니까 엄청난 일이 일어났네, 뭐라고 그래요? 모세도 있어. 엘리야도 있어. 아니 예수님이 변화 됐는데 세상에서 이렇게 흰 옷을 입은, 마치 이게 헛소리 하는 겁니다. “주여, 여기다가 초막 셋을 짓고,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삽시다.” 모르니까. 일어난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깨달아 가는 것을 우리 수준을 알고 가면 있는 것들 속에 묶지 않고, 하나님은 그 수준을 수준으로 드러내시거든요. 믿음으로. 제자들도 그렇게 깨달아 간거예요.

2020.08.13 함께하는 여름 수련회7